안나라는 캐릭터의 서사적 문제점 - 캐릭터 아크
물론 겨울왕국 시리즈가 재미있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영화안에서 나오는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드는것은 아니다. 그 중에 하나는 안나라는 캐릭터가 스토리 전체에서 묘사되는 방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왜 안나의 서사가 별로인지, 어떠한 문제점등이 있는지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Disclaimer
우선 명확히 하고 넘어가자. 이 글은 안나라는 캐릭터의 결함을 다루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대신 겨울왕국 전체 시리즈 (단편, 장편)의 내러티브적 관점에서 안나라는 캐릭터가 서술되는 문제점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주로 캐릭터 아크 (Character Arc)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자 하므로 우선 이 개념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Character Arc
캐릭터 아크라는건 주인공이 스토리 진행중 겪게되는 모든 (내적)변화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도입 → 사건발생 → 클라이막스 → 사건의 해결 → 결말 이런식의 구성을 따른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다양한 내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것들을 총체적으로 캐릭터 아크라고 부른다.
간단히 겨울왕국1편 초반부의 엘사를 생각해보자.
위 그림에서 알수있듯이 이 시절 일어난 사건들과 그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변화는 다음과 같다.
- 안나 참교육 → 공포, 격리
- 안나 장갑스틸 → 혼란, 마법 노출
- 엘사 탈주 → 자유, 마법 해방
주인공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겪고, 그에 따른 액션을 취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캐릭터는 성장, 변화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들을 캐릭터 아크라고 부른다. 굳이 아크 (arc)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영화속 주인공들의 삶은 평범한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김프붕씨의 하루를 생각해보자.
프붕이 기사아아아앙 → 아침 → 프갤 → 점심 → 프갤 → 저녁 → 프갤 → 프바
위에서 알수있듯이 김프붕씨의 삶에서 변화같은건 전혀 찾아볼수 없다. 즉, 김프붕씨는 매일매일이 똑같은 삶은 살고 이 프붕씨의 직선, 또는 평면적인 삶을 산다고 볼수있다. 일반적인 주인공들이 삶은 이렇게 단조로운 삶이 아니므로 아크(호) 라고 부른는 것이다.
안나 캐릭터 아크의 문제 - 엘사 의존성
그러면 이제 안나의 캐릭터 아크중 어떤부분이 문제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전 단락에서 말헀듯이, 캐릭터아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의 사건 발생 → 주인공의 심리변화, 상황판단 → 그에 따른 행동. 이런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위에 표시된 ‘주인공의 심리변화, 상황판단’ 이 부분이다. 영어로는 보통 Call to action 또는 Call to Adventure 라고 한다.
우선 안나가 겨울왕국 전체 스토리상에서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동기들을 정리해보자.
- 1편 : 엘사의 탈주 → 엘사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 엘사 따라감
- 피버 : 엘사의 감기 → 엘사에 대한 걱정 → 간호
- 올벤처 : 엘사의 자책 → 엘사에 대한 미안함 → 다락방수색
- 2편 : 엘사의 마법의숲 방문 → 엘사에 대한 걱정 → 따라가기
공통점이 보이는가? 그렇다. 안나가 어떠한 행동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언제나 엘사에 대한 걱정이다. 위에는 4가지만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다른 종류의 행동들도 생각해보면 모두 이 플롯을 따라간다. 예를들어 2편 넥라띵 파트를 생각해보면 엘통수 + 엘사의 죽음 → 엘사에 대한 상실, 절망감 → 넥라띵 이 구조를 따른다. 또한 1편에서 냉동안나가 된 이유도 한스의 엘사처형 → 엘사를 사랑, 걱정 → 냉동안나이 구조를 따르게 된다.
즉, 프로즌 전체시리즈를 통틀어서 안나의 모든 행동의 근본적 원인 (Call to Action) 이 되는건 엘사에 대한 걱정, 이 한가지라는 거다. 물론, 이런 이타적인 감정과 그러한 캐릭터성을 강조하는것이 나쁜다는건 아니다. 특히나 후로즌에서 강조하는 관점들중 하나인 자매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면을 자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4편
무려 4편!
한편도 아니고 시리즈 내내 똑같은 패턴만 보여주는 이러한 캐릭터에게 특이한 매력을 느낄수 잇을까? 그것도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누군가에게 의존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1차원적인 캐릭터에게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붙이는게 가능할까?
물론, 안나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내러티브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안나가 무슨 행동을 하던간에 결국 그 동기는 엘사이다. 이렇게 되면 발생하는 문제는 안나라는 캐릭터가 엘사없이 존재할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안나? 엘사 동생. 엘사를 살리려고. 엘사를 걱정해서 이런짓을 했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단조로움 속에서 안나라는 인물은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 되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개인적으로는 이런것을 극복하려면 중간중간에 다른 장치를 넣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다음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2편에서 강조되는 안나의 성향중 하나는 아렌델을 집처럼 아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어논 시점이후 엘사가 아렌델을 망가트리고 마법의 숲으로 간다고 선언했을때, 안나가 이걸 허용하는게 올바른 일일까? 이미 아렌델을 위험에 빠트린 엘사인데, 그걸 그대로 놔둔다? 이것은 분명히 아렌델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엘사와 다투고 무언가 엘사와 다른 안나만의 선택을 했다면? 이럴 경우 안나의 행동의 동기는 아렌델>엘사이고 따라서 지금까지의 안나와는 다른, 자매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왕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조금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삭제곡이긴 하지만 Home 이라는 노래의 주제와 맞기도 하고.
만약 이런식으로 시나리오가 흘러갔을 경우 안나의 캐릭터아크는 위와 같은 형식을 따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엘사 의존적인 존재와는 다른 특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예시이긴 하지만 이런식으로 캐릭터아크를 좀 다양하게 꾸몄더라면 안나에게 좀더 새롭고, 입체적인 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엘사의 경우
엘사의 캐릭터아크와 비교할 경우 안나의 그것이 얼마나 단조로운지 단번에 느껴진다.
- 1편 : 안나 참교육 → 미안함, 공포 → 컨씰 돈필
- 1편 : 탈주 → 해방, 자유로움 → 얼음성
- 피버 : 안나생일 → 기쁨, 흥분 → 생일파티 준비
- 올벤처 : 안나에 대한 화 → 미안함 → 사과
- 2편 : 의문의 목소리 → 호기심, 흥분 → 여행
이외에도 여러가지 굵직한 사건들이 있지만, 엘사의 경우 어떠한 액션을 취할때의 원인과 동기가 굉장히 다양하게 묘사되는 편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엘사에게는 ‘이때는 겁에 질려서 이런 행동을 했고, 이떄는 기뻐서, 슬퍼서’ 등등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 아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즉, 이 캐릭터의 매력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것중 하나는 이런 동적인 캐릭터아크의 설계에도 있다고 볼수있다.
중간 요약
안나의 캐릭터 아크중 동기부여 부분이 너무 엘사에게 의존적이다.
비현실적 캐릭터 아크
두번째로 이야기할 주제는 비현실성이다. 캐릭터아크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한가지 전제가 ‘현실성’이 어느정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성이 너무 없을경우 공감을 하기가 힘들고, 현실성이 너무 강할경우 극적 상황을 연출하기기 힘들어진다. 캐릭터아크의 형성에서는 이 현실성과의 경계를 적절히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나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강해서’ 문제이다. 우선 사실들부터 정리해보자.
- 1편에서 안나는 엘사에게 다가가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 피버에서 생일파티로 행복한 엘사지만 결국 안나만 하루종일 걱정하며 속을 태운다.
- 올벤처에서는 일방적으로 Close the door 을 당한다.
- 2편에서는 난파선에서 엘통수를 맞고 버려지기도 하며
- 초반엔 서로 비밀이 없기로 하자는 중요한 약속을 먼저 깨버린 것도 엘사다.
즉, 안나는 모든 작품내내 엘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지만, 엘사에게서 돌아오는건 거절, 통수, 상처 뿐인것이다. 작중에서는 엘사도 분명 안나를 비슷하게 사랑한다고 나오지만 통수치는것에 비하면 그 빈도가 심하게 적다. 그리고 작중 엘사가 안나를 아낀다고 하는 행동들도 따지고보면 신체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엄청난 압박과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언제나 상처를 받는 쪽은 안나였고, 그 고통을 견뎌내고 감당해야 한것도 안나였다. 혼자서.
상처의 치료
문제는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인간이라면 이러한 외부의 압박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회복해야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안나는 이러한 상처를 받더라도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등장해서 밝은 모습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러한 모습이 멘탈왕 안나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 측면이 너무 강조되다보니 오히려 후반에 가서는 안나가 받는 상처 들이 오히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오다보니 계속보다보면 엘사가 악역인가? 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정의에 일방적인 사랑은 보통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엄청난 상처와 배신감을 계속 준다면? 그래도 그 사람을 끝없이 좋아할 수 있다는게 우리가 공감하고 감동을 받을수 있는 내용일까? 물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끈기와 밝음이 안나가 가지고 있는 성품이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건, 이것이 일반적으로 좋은 캐릭터 아크는 아니라는 것이다. 안나의 자매애를 우리가 공감할수 있으려면 적어도 2편에서는 엘사가 정신적으로 안나에게 고통을 주는 모습이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요약하면, 안나가 보여주는 엘사에 대한 사랑에 비하여 그것에 돌아오는 보상은 언제나 안나에게 정신적 고통, 배신감,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과정이 영화전반에 등장하지를 않는다. 그런것들로 인하여 오히려 안나라는 인물이 받는 이러한 스트레스, 고통이 자칫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보이게 되는 현상이 벌어져 버리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보상 없이 고통만 받는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사실 이렇게 쓰고나니까 안나의 아치에너미가 사실 엘사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어쩄든 이러한 점들로 인하여 안나의 캐릭터아크가 좋게 평가받을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차라리 안나가 이러한 엘사에게 화가나서 갈등이 생기는 장면이나, 엘사에 대한 사랑이 무너지는 등의 연출이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이러한 충분히 우리가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약
전반적인 캐릭터 아크의 관점에서 안나의 캐릭터 서사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캐릭터 아크 관점에서 따져볼떄 안나가 가지는 문제점은 크게 2가지인데
- 엘사에 대한 의존성과 그것의 무한반복.
- 헌신적 사랑에 언제나 고통만 돌아오는 것에 무감각한 주인공.
이 두 가지이다. 안나라는 캐릭터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고 끈기가 있으며 이타적 마음가짐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캐릭터아크로 인하여 그 점들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했던 점이 영화 전체에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고 본다.